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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일기

[가족일기6] 치매에 걸린 외할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시고 20일이 지났다.

by 건강한 하루살이 2021.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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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치매를 꽤 오랜기간 앓고 계셨다. 건강하고 기운이 넘치는 나이에 치매가 왔기에 통제도 힘들었고 왜 저렇게 멀쩡한 사람이 저렇게 살아야 하는지 보는 것 만으로도 속상할 일이었다.

치매의 시작은 어쩌다 한번씩 치매증상으로 사람을 힘들게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대부분의 시간이 힘들어지고 어쩌다 한번씩 정신이 멀쩡해지는, 우리가족의 말로는 정신기운이 좋은날 = 치매증상이 없이 정신이 온전한날이 드물어 갔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노화가 진행될수록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은 줄었다. 스스로 버스를 탈 수 없게되면서 병원도 혼자 다니지 못하게 되시고, 누군가 옆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대부분이 되었다.

가끔 티비에 나오는 90세가 넘어서도 글을 쓰고 무언가 배우고 열심히 사는 건강한 노인을 보면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나에게 젊어서 고생을 많이하면 늙어서 몸이 아프다는 것을 그렇게 몸소 알려주고 계셨다. 젊어서 몸을 아끼고 무리하지 않아야 나이들어서 저렇게 관절 통증이 없겠구나 싶었다.

노인이되면 귀가 어두워진다. 그렇게 이해력도 떨어진다. 사람을 잘 믿는 시골 마을의 노인들은 사기 당하기도 쉬운 입장이되었다. 그래도 밥을 스스로 드시고, 화장실 대소변도 스스로 하실 때는 그게 감사한 일인지 몰랐다.

할아버지는 이곳저곳에 변을 보고 혹은 팬티에 그냥 볼일을 보시기도 했다. 키가 크고 덩치가 좋았던 할아버지는 대소변 뒷처리를 해주는 것 만으로도 주변인에게 많은 스트레스를 주었다. 부모는 열 자식을 그렇게 키우지만, 열 자식은 한 부모를 못모신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도 꽤 오랜기간 할아버지는 집에서 가족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지내셨다. 어느날 부터인가 점점 할아버지의 입에서 내 이름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 나를 알아보지 못하게 되셨다. 그래도 운이 좋은 날엔 내이름을 불러주시기도 했다. 요양원에 보내는 것이 마음아픈 이유가 이런 운이 좋은 날이 가끔 찾아오기 때문일 것 같다. 아예 영영 기억을 잊으시면 어차피 알아보지도 못하고 기억도 못하시는데 요양원에 모시는게 맘의 가책이 덜 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정신기운이 돌아오시는 날이 종종 있었기에 요양원에 보내는걸 엄마 형제들은 모두 반대했다.

하지만 증세가 악화되면 될수록 주변인의 피로도는 높아져갔다. 하룻 밤 사이 소변을 10곳이상 보고 다니셨다. 긴 시간 주무시지 못하고 새벽에 수 차례 깨어 돌아다니셨다. 새벽에 정신기운이 돌아오는 날엔 현실자각을 하고 스스로의 신세 한탄을 하기도 하셨다.

할머니는 젊어서 밭일을 너무 많이하셔서 온몸이 매일 아프다고 하신다. 양쪽 무릎을 모두 수술했지만 통증이 나아지지 않아 허리도 수술하셨다. 심장 혈관에 때?가 많이 끼었다고 청소해줘야 한다고 해서 수술도 하셨다. 나이가 들면 백내장은 기본이고 계속해서 수리해 가면서 사용해야 하는 몸이 되나보다. 나이먹는게 조금은 무서워지는 부분이다. 그래도 할머니는 아직은 본인이 기력이 있으니 괜찮다고 요양원에 보내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지만 이제 할머니도 한계가 오셨나보다. 본인도 같이 죽을 것 같으니 이제 요양원에 보내라고 하셨다.

추석이 지나고 9월 28일 할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셨다. 가족들이 할아버지 앞에서 수 차례 요양원 이야기를 했지만 본인의 이야기인지, 본인이 요양원에 가게되는지 알 지 못하셨다. 한달에 60만원이라는 요양원 비용이면 할아버지를 모실 수 있다고 한다. 엄마는 요양원에 모시기로 한 날 이후 자꾸만 눈물을 흘리셨다. 날짜가 다가올수록 엄마는 더 많이 울었고 가시기전에 뭐라도 더 챙겨드리려고 분주했다.

요양원에 모시는 날 멀리사는 삼촌과 이모가 오셔서 같이 요양원에 갔다 오셨는데, 보내는 마음이 아프지만 현실적으로 그 누구도 할아버지를 돌볼 형편이 되지 않았다. 요양보호사도 낮에 잠시 있어주는 수준이기 때문에 역부족이다.

요양원에서는 적응할동안 한달정도는 찾아오지 않는게 좋다고 이야기 했지만 엄마는 계속 불안해 했고 요양원장님이 와도 괜찮다고 보고싶으면 오셔도 된다는 말에 엄마는 다음날 아침에 곧바로 찾아갔다. 코로나 때문에 맘대로 드나들 수 없어 전화로 할아버지 보러왔다고 하니, 직원이 나와서 아침에 제일 바쁜시간이라고 오시려면 저녁에 오시라고 했다. 엄마는 그냥 돌아오셨다. 결국 저녁에 보러 다녀오고 그다음날도 또 찾아가고 또 찾아가셨다. 찾아가도 주무시거나 못알아보시거나 하셔서 그냥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요양원 직원분이 기분나빠 하시며 그렇게 못믿겠고 불안하셔서 계속 왔다갔다 하실거면 다시 모시고 가라고 한마디 한 모양이다. 엄마는 선생님께 크게 꾸중들은 아이마냥 기가 죽어 돌아왔다. 엄마는 며칠을 참는 듯 했는데 맘에서 쉽게 놔버리지 못하는지 요양원 직원분들 간식을 사들고 가셨다. 뭐라도 들고가면 기분나쁘게 상대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요양원에서 식사시간이 되면 아이가 유아식 먹듯 턱받이를 다 하고 식사를 한다고 한다. 마치 어린이집에 보낸 느낌이 들었다고 하셨다. 어느날엔 기분이 좋아 댄스시간에 춤도 추셨다고 하고 잘 지내신다고 하니 엄마 마음도 조금씩 풀리는 듯 했다.

역시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여기에도 적용이 되는 듯 하다. 그렇게 조금씩 엄마 눈물도 마르고 할아버지도 잘 적응해가셨는데 어제는 삼촌이 방문했다가 할아버지가 정신기운이 좋은날이어서 삼촌에게 쌀쌀맞게 대하셨다고 했다. 서운하냐는 질문에 할아버지는 너같으면 안서운하겠냐고 하셨다고 했다. ㅠㅠ

그말을 듣고 또 우는 엄마... 엄마의 모습이 미래의 내모습이 될까 너무 걱정이 되고 엄마가 울면 나도 맘이 아프고,, 시간이지나면 덤덤하게 지내는 날이 또 오겠지...

오늘의 하루에 감사하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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